EPISODE 28

네 대의 위치, 한 대의 반환

지산맨션에는 빈방이 없다

9월 23일 오전 8시 07분, 재호는 전날 박성문에게 돌려준 빨간 플라스틱 열쇠 네 개를 다시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열쇠는 네 개였지만, 그가 적어 둔 수레는 다섯 대였다. 맨션 복도 끝의 낡은 한 대와 협력망이 우선 배치 후보라고 부른 네 대. 수량은 이미 충분했다. 충분한 것은 대개 사실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해인이 관리실 문을 열자 복도 끝의 수레가 먼저 보였다. 붉은 페인트의 갈라진 자리에 어제 최경태가 붙인 종이가 남아 있었다.

소유자: 동해소방설비. 보관자: 지산맨션 관리실. 운영자: 없음. 운영 데이터: 생성하지 않음. 반환 시각: 9월 23일 14시.

그 아래에 최경태의 글씨로 작은 문장이 있었다.

‘바퀴를 밀면 운행인가?’

“어제 세 걸음 굴러간 건 운행으로 칠 겁니까?” 수완이 물었다.

“그걸 오늘 확인하러 갑니다.” 재호가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어디로요?”

“네 대가 있다는 곳.”

해인은 잠금장치에 손을 대다 멈췄다. 어제 그녀의 카드에서 빠져나간 12만 원 결제 문자가 휴대전화 화면에 아직 남아 있었다.

“반환 전에 보증금이 돌아오는 조건부터 받아요.”

“업체가 수레를 가져가면 끝 아닌가요?”

“끝나는 건 수레의 보관이지, 돈의 관계가 아니에요.”

재호는 장부 맨 위에 네 칸을 그렸다. 소유자, 보관자, 운영자, 데이터 생성 여부. 지난밤까지 수량과 수령 사이에 있던 빈칸이 네 방향으로 갈라졌다.

오전 9시 02분, 협력망 창고는 지산맨션에서 차로 스무 분 거리에 있었다. 박성문은 창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어제와 같은 빨간 열쇠를 네 개 들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검은 테이프를 떼어낸 상태였다.

“실제 일련번호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수레도 네 대 다 있습니까?” 해인이 물었다.

박성문은 문을 열었다.

안쪽에는 붉은 수레 한 대가 랙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새것 냄새가 났고, 손잡이에는 ‘권역 안전 자원’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바퀴 옆 금속판에는 A-04라고 적혀 있었다.

재호가 열쇠의 마지막 두 자리와 금속판을 대조했다. 맞았다.

“나머지는요?”

“권역 순환 배치 중입니다.”

“지금 위치가 어디죠?”

박성문은 태블릿을 켰다. 지도에는 세 개의 점이 떠 있었다. 하나는 동쪽의 체육관, 하나는 북쪽의 물류센터, 하나는 회색으로 잠긴 수리소 표시였다.

“세 대는 다른 현장에 있거나 이동 대기입니다. 협력망 소유입니다.”

“그럼 지산맨션에는 한 대도 배치되지 않았네요.”

“우선 배치 후보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후보라는 말이 수레를 운반합니까?”

재호의 질문에 박성문은 웃지 않았다.

“필요하면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누구죠?” 해인이 물었다.

“현장 운영 주체가 요청하면요.”

“요청하면 소유자가 바뀝니까?”

“소유권 이전은 아닙니다.”

“그럼 보관자는요?”

박성문은 잠깐 태블릿을 내려다봤다.

“현장에 들어간 뒤 정합니다.”

해인은 수레의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대신 금속판의 번호를 장부에 옮겼다.

A-04. 현재 보관: 협력망 창고. 소유: 협력망. 지산맨션 수령: 없음. 운영자: 없음. 접근 기록: 협력망 내부 이동 목록만 확인.

“네 대를 공급한다고 했습니다.”

“공급 권역분입니다.”

“공급과 배치는 다르다.” 재호가 말했다. “어제 들은 문장과 같네요. 그런데 오늘은 위치와 소유도 다릅니다.”

박성문은 네 개의 열쇠를 손바닥에 세웠다.

“지산맨션이 수령을 거부해서 순환 배치로 들어간 겁니다.”

“거부하기 전에 이미 다른 곳에 있었잖아요.”

박성문이 대답하지 못한 짧은 틈에 창고 안쪽에서 지게차 경고음이 울렸다. 수레 한 대의 그림자가 움직였고, 재호는 그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았다. 사진으로는 수량을 만들 수 없고, 그림자로는 소유자를 만들 수 없었다.

오전 10시 11분, 체육관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그곳의 수레는 B-11이었다. 물류센터의 수레는 C-02. 수리소에 들어간 것은 D-07. 협력망 창고의 A-04까지 네 대의 번호가 맞춰졌다.

그러나 B-11은 체육관 행사 뒤 회수 예정이 아니었다. 체육관 측은 “잠깐 맡아 둔 것”이라고 했고, 물류센터는 “협력망이 두고 간 것”이라고 했다. 수리소는 소유자 확인이 끝나야 수리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네 대 모두 협력망 소유라고 하던 박성문의 말이 장부의 네 칸에서 흔들렸다.

“소유자가 협력망이면 왜 수리소가 소유자 확인을 요구하죠?” 수완이 물었다.

“수리 접수 절차입니다.”

“절차가 소유자를 못 믿는군요.” 미경이 말했다. “사람보다 수리소가 더 신중하네.”

박성문은 수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 그는 ‘권역 자원’, ‘무상 운영’, ‘시범 물량’이라는 말을 세 번 반복했다. 수리소 직원은 그 뒤에도 법인명과 구매번호를 요구했다.

재호는 그 대화를 들으며 네 대의 공급이 한 번도 같은 문장에 놓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공급자는 수량을 말했고, 창고는 위치를 말했고, 수리소는 소유 증명을 요구했다. 맨션이 받아야 할 것은 수레가 아니라 이 세 문장이 한 장에 같이 있는지 여부였다.

오전 11시 03분, 최경태의 작업 앱에 알림이 떴다.

‘지산맨션 대피 수레 임시 수령자: 최경태.’

그는 알림을 보자마자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이번엔 이름을 지우지 말고, 소유자를 입력하세요.” 재호가 말했다.

“입력 칸이 없어요.”

“그럼 수령자를 만들지 말고, 칸이 없는 상태를 캡처하세요.”

박성문이 말했다.

“현장 작업자가 받는 게 가장 빠릅니다.”

최경태가 고개를 저었다.

“빠른 건 제가 해도, 책임은 제가 못 정합니다. A-04를 제가 받아서 지산맨션으로 가져오면, 제 이름이 보관자와 운영자로 같이 찍힙니다. 그다음에 사고 나면 ‘현장 작업자가 사용했다’가 되겠죠.”

“그런 뜻은 아닙니다.”

“앱은 뜻을 저장하지 않아요.”

건조한 말이 창고의 새것 냄새보다 오래 남았다.

해인은 네 대의 목록을 박성문 앞에 밀었다.

“네 대 모두 오늘 지산맨션에 들이지 않습니다. 실제 위치와 소유 증명이 한 장으로 오고, 운영자를 따로 지정하고, 주민 수령 동의가 있을 때만 다시 논의합니다.”

“그렇게까지 하면 우선 배치 후보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

“빠지는 건 후보지, 수레가 아니죠.”

“후보에서 빠지면 긴급 상황에 자원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해인은 잠깐 복도 끝의 낡은 수레 사진을 보았다. 무료라는 말은 어제부터 계속 문 앞에 서 있었고, 오늘은 긴급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다.

“긴급할 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원은, 자원이 아니라 번호표예요.”

정오가 지나 동해소방설비 남자가 관리실에 도착했다. 그는 수레를 보자마자 보증금 반환용 확인서를 꺼냈다.

“외관 이상 없고, 배터리 충전량도 그대로입니다.”

한미수가 장갑을 끼며 말했다.

“운영 데이터가 없다는 건 어떤 범위입니까?”

남자는 조종기를 들어 보였다.

“저희 장비에는 원격 통신이 없습니다. 다만 어제 수레를 복도 끝까지 밀어 보셨죠. 바퀴 축에 점검용 회전 표시가 남을 수 있습니다.”

해인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운행 데이터가 아니라 물리적 흔적이네요.”

“예. 전자 기록은 없습니다.”

재호는 수레의 바퀴를 보았다. 타일의 솟은 부분을 넘은 고무 자국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수레는 아무것도 저장하지 않았지만, 바닥은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미수가 바닥 사진을 찍으려 하자 해인이 손을 들었다.

“사람 얼굴이나 개인 정보는 없지만, 사진도 기록입니다. 업체 확인서에만 붙이고 공개 장부에는 결과 코드만 남겨요.”

남자는 처음으로 불편한 얼굴을 했다.

“그럼 저희가 수레를 가져갔다는 증거는요?”

“반환 시각, 일련번호, 보증금 반환 문자.”

“현장 사진이 없으면 나중에 다른 수레를 돌려보냈다고 하실 수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일련번호를 적습니다.”

재호가 말했다. “사진이 책임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고, 번호가 책임을 붙잡게 하죠.”

선택지는 두 개로 좁아졌다. 사진을 남겨 업체의 의심을 달래고 새로운 보관 기록을 만들거나, 사진 없이 번호·시각·반환 문자를 서로 대조해 12만 원을 돌려받는 것. 해인은 업체가 내미는 휴대전화 촬영 동의란을 보았다. 거기에는 ‘점검 및 반출 목적의 현장 촬영’ 아래 ‘향후 분쟁 시 증빙 활용’이라는 문장이 작게 붙어 있었다.

“이 문장은 안 됩니다.”

“보증금을 돌려드리려면 필요합니다.”

“보증금 반환과 촬영 이용은 별개예요.”

해인은 종이를 접지 않고 업체 쪽으로 돌려보냈다.

“촬영 없이 반환하세요. 아니면 수레를 오늘도 보관하되, 보관 연장 비용과 촬영 요구의 근거를 적어 주세요.”

업체 남자는 재호를 보았다. 재호는 해인의 말을 막지 않았다. 어제 그녀가 개인 돈을 내면서 만든 관계는 오늘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 새로운 기록을 요구하고 있었다. 보증금은 임시 관계의 끝이 아니라, 끝나는 방법을 정하는 작은 권력이었다.

오후 1시 42분, 남자는 결국 별도 확인서에 서명했다. 소유자 동해소방설비, 보관자 지산맨션, 운영자 없음, 전자 운영 데이터 생성 없음, 반출 일련번호 일치, 보증금 반환 시각 13시 46분. 사진은 없었다.

해인은 휴대전화에 입금 알림이 뜬 뒤에야 수레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12만 원이 돌아왔다. 공동기금 잔액은 여전히 0원이었다.

“돈은 돌아왔는데,” 미경이 말했다. “왜 제가 진 것 같죠?”

“우리가 산 건 수레가 아니라 하루였으니까요.” 재호가 말했다.

“하루치가 12만 원이면 비싸네요.”

“대구 복도 임대료라고 생각해요.”

“복도는 월세도 안 받는데요.”

“그래서 더 비싼 겁니다.”

오후 2시 06분, 박성문이 네 대의 최종 목록을 보내왔다. A-04는 협력망 창고, B-11은 체육관 임시 보관, C-02는 물류센터 적치, D-07은 수리소 입고 대기. 네 대의 소유자는 협력망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구매번호와 수리 승인자는 비어 있었다. 운영자는 네 대 모두 미지정. 지산맨션 배치 시각도 미정이었다.

해인은 목록의 마지막 줄에 자체 판정을 붙였다.

‘네 대는 권역 내 존재가 확인되었으나 지산맨션에 배치되지 않았다. 맨션은 수령·보관·운영에 동의하지 않는다. 소유 증명 보완 전까지 후보 등록은 공급 약속으로만 취급한다.’

박성문이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쓰시면 협력망과의 안전 협력 자체를 거부하는 걸로 남습니다.”

“안전 협력을 거부한 게 아니라, 네 대를 받았다는 기록을 거부한 겁니다.”

“다음 배치 순위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재호가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그 순위표에 오늘 확인된 위치 네 곳과 소유자 증명 빈칸도 같이 넣으세요. 순위만 남으면 우리는 다시 숫자의 배경이 됩니다.”

“협력망 양식에는 그런 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협력망 양식에는 우리 서명이 없습니다.”

통화가 끊긴 뒤 관리실은 잠깐 조용했다. 복도등이 1층부터 켜졌다. 낡은 수레가 있던 자리가 비었고, 벽에는 한 대의 그림자도 남지 않았다. 대신 장부에는 네 대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다른 속도로 멈춰 있었다.

해인은 네 칸의 확인서를 주민 게시판에 붙이지 않고 관리실 안쪽에 보관했다.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위치와 미지정 상태까지였고, 구매번호가 비어 있는 소유 증명은 아직 공개 사실이 아니었다.

재호가 물었다.

“왜 안 붙여요?”

“우리도 확인되지 않은 빈칸을 사람들 앞에서 사실처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녀는 확인서 아래에 다음 행동을 적었다.

‘9월 24일 오전 9시까지 협력망은 네 대의 소유 증명과 운영지원 책임자 오재문 팀장의 접근 로그 확인 방법을 제출한다. 미제출 시 우선 배치 후보 등록을 수령 요청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재호가 그 문장에 먼저 서명했다. 해인은 한 박자 뒤에 서명했다. 두 사람의 서명 사이에는 빈칸이 하나 남았다. 협력망이 채워야 하는 칸이었다.

밤 7시 18분, 공동 장부의 오늘 줄에는 숫자들이 나란히 놓였다. 네 대는 존재 확인. 지산맨션 배치 0대. 임시 보관 1대, 반환 1대. 보증금 반환 12만 원. 공동기금 0원.

재호는 마지막으로 A-04, B-11, C-02, D-07을 적고 각 번호 옆에 서로 다른 장소를 썼다. 네 대는 이제 한 약속이 아니었다. 네 개의 주소와 네 개의 보류였다.

해인은 관리실 불을 끄기 전에 창고에서 찍어 온 A-04의 금속판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사진에는 사람도, 얼굴도, 수레의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나 숫자 아래에 희미한 스티커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한 번 ‘지산맨션’이라는 종이를 붙였다가 떼어낸 흔적이었다.

“이건 배치된 적이 있다는 증거인가요?” 수완이 물었다.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배치될 예정이었다는 흔적일 뿐이에요.”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아홉 시까지, 네 대의 소유 증명과 접근 로그를 확인할 방법이 오지 않으면 맨션은 다시 선택해야 했다. 안전을 위해 후보로 남을 것인지, 후보라는 이름까지 거부할 것인지.

이번에는 열쇠가 먼저 오지 않을 것이다. 빈칸을 가진 문서가 먼저 올 터였다.

---

생성 시각: 2026-08-23T23:15:57+09:00

MOBOT 세계관 변환 근거

- 네 대의 무인 소방 장비 공급을 탐색한 기록: 이번 회차에서 네 대가 실제로 어디에 있고 누구 소유인지 확인하는 사건의 직접 원인이다. - 제조 현장에 장비를 투입하는 탐색 기록: 지역 업체 수레의 운행 여부와 운영 데이터 미생성을 확인하는 장면의 구조를 제공한다. - 공급망 협력사를 따라간 탐색 기록: 12만 원 보증금 반환과 운영 데이터 미생성 확인이 이번 회차의 실제 비용 회수 장치다. - 휴머노이드 장비 경쟁을 탐색한 기록: 두 공급자의 경쟁을 성능 자랑이 아니라 소유·운영·반환 책임의 차이로 변환하는 보조 압력이다.

생성 시각 6,812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