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3

주인이 셋이면 과거가 싸운다

서울은 관계를 허가한다

한도윤의 오른쪽 눈에 새겨진 0은 문신이 아니었다.

윤서진이 손전등을 비추자 숫자가 동공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였다. 살아 있는 표시였다. 0호선 승객에게 찍히는 귀속 표식과 같은 빛깔이었다.

“언제 탔어요?”

“질문이 너무 친절하네요. 보통은 언제부터 사람이 아니었냐고 묻는데.”

“사람인지 판정하는 부서는 9층입니다.”

“관료제에 경의를.”

도윤은 안경을 다시 썼다. 그 순간 세 갈래 붉은 선이 승강장 바닥을 찢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국가 귀속, 민간 개발권, 원거주자 공동 소유. 상충 후보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었다. 어느 하나가 승인되면 나머지 둘은 거짓말이 되고, 거짓말에 매달린 사람과 돈도 함께 밀려났다.

민우가 벽을 짚고 일어났다.

“저, 복귀 신고부터 하면 안 됩니까? 사라진 동안 무단결근 처리됐을까 봐.”

“당신 인사 기록은 아직 없어요.” 서진이 말했다.

“그럼 결근도 아니군요.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편안해할 상황은 아니었다.

광화문 전광판의 금융 뉴스가 전부 바뀌어 있었다. 영번선 관련주가 상한가를 기록했고, 존재하지 않던 청명도시개발의 주가가 개장도 하기 전에 표시됐다. 서울교통기억공사는 긴급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무명시민연합은 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지워진 사람에게도 지분이 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진의 임시 판정이 현실에 공급한 것은 진실 한 조각이 아니었다.

전쟁의 종이었다.

검은 세단 두 대가 지하보도 앞에 멈췄다. 감정원 규제실 직원들이 내렸다. 남기준이 가장 늦게 차에서 나왔다.

“윤서진 감정관. 단말과 인장을 제출하세요.”

서진은 민우를 자기 뒤로 숨겼다. 우스운 행동이었다. 키는 민우가 더 컸다.

남 실장의 시선이 민우를 통과했다. “누구를 보호하는 겁니까?”

“오민우. 7감정실 계약직.”

직원들의 얼굴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민우가 작게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기분 나쁘네요.”

서진은 자신의 인장을 꺼냈다. “임시 판정은 현장 증거에 근거했습니다. 재심위원회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위원회가 열릴 때까지 시장 손실이 얼마일지 압니까?”

“진실에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고 가르친 분이 실장님이었죠.”

“그래서 가격을 모르는 사람이 시장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남 실장이 손을 내밀었다.

그때 누군가 세단 보닛 위에 앉아 박수를 쳤다.

붉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사과를 베어 물고 있었다. 감정원 직원 두 명이 그녀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여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좋은 장면이네요. 규제는 늘 사고 뒤에 와서 사고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죠.”

도윤이 한숨을 쉬었다. “박라희. 내려와.”

“나를 부른 건 당신이야.”

“자료만 가져오랬지 차량을 가구로 쓰랬나.”

박라희는 보닛에서 내려와 서진에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세 후보의 자금 흐름이 표시돼 있었다.

서울교통기억공사는 판정 접수 십이 분 전에 긴급채권을 발행했다. 청명도시개발은 접수 세 시간 전에 설립됐고, 자본금의 92퍼센트가 관계파생시장 청산계정에서 들어왔다. 무명시민연합은 돈이 없었다. 대신 조합원 214명의 주소가 모두 현재의 지도에서 존재하지 않는 필지였다.

“셋 다 수상하군요.” 서진이 말했다.

“그건 분석이 아니라 서울 시민의 평균 상태예요.” 라희가 사과 씨를 씹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누가 먼저 알았느냐지.”

남 실장이 태블릿을 빼앗았다. “불법 취득 자료입니다.”

“합법 시장의 공개 호가예요. 읽는 데 자격증이 필요하진 않죠.”

“한도윤 씨와 박라희 씨를 관계조작 혐의로 체포합니다.”

도윤이 서진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제 감정관님이 선택할 시간입니다.”

“나한테 떠넘기지 마요.”

“선택하지 않는 것도 가장 비싼 선택이라는 걸 아시잖아요.”

남 실장의 직원들이 다가왔다. 서진은 세 후보의 시간표를 다시 보았다. 국가 공사는 임시 판정 전에 자금을 조달했다. 민간 회사는 더 빨리 태어났다. 둘 다 사건이 공개되기 전에 움직였다. 경쟁이라기보다 준비된 각본에 가까웠다.

반면 무명시민연합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이름도 돈도 주소도 불완전했다. 너무 엉성해서 조작 세력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엉성함은 진실의 증거가 아니었다. 가난도 무죄의 증거가 아니었다.

서진은 민우에게 물었다. “열차 안에서 다른 사람을 봤어요?”

“얼굴은 못 봤습니다. 좌석마다 이름표가 있었어요.”

“몇 개?”

“이백열네 개.”

라희가 태블릿의 조합원 수를 가리켰다. 214.

“이건 관계 증거가 됩니다.” 서진이 말했다.

라희가 손가락으로 호가창을 넘겼다. 세 후보를 둘러싼 기사들의 온도도 달랐다. 국가 공사 쪽 문장은 ‘안정’과 ‘회복’을 반복했고, 청명도시개발 쪽은 ‘선점’과 ‘폭등’을 외쳤다. 무명시민연합을 다룬 기사는 ‘괴담’과 ‘떼법’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같은 소유권 다툼인데 한쪽은 질서, 한쪽은 기회, 한쪽은 소란으로 서술돼 있었다.

“사람들은 사실을 읽기 전에 장르를 사요.” 라희가 말했다. “공기업은 재난극, 민간회사는 성공담, 가난한 사람은 범죄물.”

서진은 무명시민연합의 천막을 보았다. 그들 중 누구도 카메라 앞에서 같은 말을 하지 못했다. 의견이 갈렸고 숫자를 틀렸고 서로의 이름도 헷갈렸다. 조직된 조작의 매끄러움이 없었다.

“저들의 불일치도 기록해요. 합의하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진실 판정에 분위기도 넣습니까?”

“분위기로 판정하진 않아요. 누가 어떤 서사를 이익으로 쓰는지는 봐야죠.”

남 실장의 표정이 굳었다. “한 사람의 기억뿐입니다. 그것도 귀속이 불안정한 사람의.”

“장부의 제1차 시험 적재 한도는 200명이었어요. 이후 시험에서 수가 늘었고, 현재 승객 좌석이 214개. 조합원 수와 일치합니다. 독립된 흔적 셋이 같은 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공동 소유를 승인하겠다고?”

“아니요. 원거주자와 영번선 사이의 이용 관계만 임시 승인합니다. 소유권 경쟁은 열어 두고.”

도윤이 미소를 지었다. “한 명의 왕 대신 214명의 증인을 만드는군.”

“왕은 거짓말하기 쉽지만 군중은 같은 거짓말을 맞추기 어렵죠.”

서진은 압수되기 전 마지막으로 인장을 들었다.

남 실장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 판정이 나가면 지워진 주소들이 지도에 돌아옵니다. 그 위에 지금 무엇이 세워져 있는지 알아요?”

“모릅니다.”

“아파트, 도로, 병원. 현재 시민 수십만 명의 생활입니다. 과거를 돌려놓는다고 현재가 자리를 비켜 주진 않아요.”

처음으로 그의 반대가 협박이 아니라 경고로 들렸다.

서진은 잠시 망설였다.

민우가 말했다. “선배. 제가 돌아왔다고 다른 사람이 사라져야 합니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판정 범위를 좁혔다. 주소 복원은 제외. 신원과 이용 이력만 한시 복원. 소유권은 미확정. 현실이 한 번에 찢어지지 않도록 가장 얇은 연결만 선택했다.

“허가.”

도장이 빛났다.

광화문 광장의 소리가 한순간 사라졌다가 폭발하듯 돌아왔다. 사람들의 휴대전화 연락처에 낯선 이름이 생겼다. 가족사진의 빈 공간에 얼굴이 나타났다. 병원 전산망에는 주인 없는 진료 기록 214건이 환자와 다시 연결됐다.

그리고 금융 전광판의 숫자가 추락했다.

청명도시개발 주가는 0원이 됐다. 회사 건물 간판이 사라졌다. 출근 중이던 직원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던 중인지 잊고 길가에 멈췄다. 서울교통기억공사 채권은 반 토막 났다. 반대로 무명시민연합 명의 계좌에는 과거 미지급 보상금이 한꺼번에 귀속되기 시작했다.

관계 하나가 사람을 돌려놓고 다른 사람의 직업을 지웠다.

서진의 손에서 인장이 떨어졌다.

남 실장이 그것을 주웠다. “자격 정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뇨. 아직 모릅니다. 방금 사라진 청명도시개발 직원 중 한 명이 당신 아버지입니다.”

서진은 웃을 뻔했다. 아버지는 십 년 전 죽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저장돼 있지 않은 번호였지만 화면에는 ‘아버지’라고 떴다.

전화를 받자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렸다.

― 서진아. 회사가 없어졌어. 그런데 내 기억에는 내가 거기서 십이 년을 일했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 실장이 낮게 말했다.

“상충 관계는 승자와 패자를 고르는 일이 아닙니다. 어느 쪽의 과거를 현재로 만들지 고르는 일이에요.”

그는 인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당신은 감정관이 아니라 사건 당사자입니다.”

광장 건너편에서 무명시민연합 사람들이 하나둘 서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감사가 아니라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그들 사이에 카메라를 든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도윤이 숨을 삼켰다.

“지우야.”

남자는 도윤을 보지 않았다. 렌즈를 서진에게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터진 뒤, 광장 한복판에 없던 계단이 나타났다.

---

생성 시각: 2026-08-19T21:41:33.2494746+09:00

MOBOT 세계관 변환 근거

- 아틀라스와 옵티머스의 COMPETES_IN 관계: 동일 분야 경쟁이 단순 대결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래 서사를 선점하는 행위라는 점을 세 후보 분쟁으로 변환했습니다. - 유니트리 G1의 추가 COMPETES_IN 관계: 양자 대결을 피하고 서로 다른 정당성과 자원을 가진 다극 경쟁으로 확장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 옵티머스 대량생산 목표 보도: 실현 전 목표가 현재의 기대와 가격을 움직이는 기사 분위기를 미확정 관계의 선행 거래로 바꿨습니다.

생성 시각 4,612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