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1
빈방이 사람을 들인다
지산맨션에는 빈방이 없다
재호는 관리실 셔터를 올리려다 말고 3층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새벽의 지산맨션은 밤새 식은 국 냄새와 젖은 콘크리트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복도등은 1층부터 켜졌지만 3층 전등만 한 박자 늦게 깜빡였다. 그 아래 302호 문에 흰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즉시 입주 가능. 보증금 삼백, 월세 사십오. 문의 한재호.
재호는 종이를 떼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계단 위에서 해인이 내려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이건 허위 공고예요.”
“그래도 떼기 전에 찍어야 해요.”
해인의 손가락은 차가웠다. 재호가 내려다보자 그녀는 곧 손을 놓았지만 종이 앞을 비키지는 않았다. 집주인의 조카라는 말만으로도 주민들 앞에서는 충분히 힘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힘보다 잠을 설친 사람의 초조함이 먼저 떠올랐다.
재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종이의 앞면과 문고리, 주변 바닥을 차례로 찍었다. 종이 뒷면에는 관리실 전화번호가 희미하게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아래 누군가 볼펜으로 입주 상담 한재호라고 적어 놓았다.
“제 이름을 왜 여기다 써요?”
“그걸 물어보려고 사진 찍는 거예요.”
해인이 종이를 떼어 조심스럽게 반으로 접었다. 재호는 당장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내민 투명 파일 안에 종이를 넣었다.
1층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장미경이 슬리퍼를 끌며 올라왔다. 손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두유가 들려 있었다.
“월세 사십오면 진짜 싼데요? 302호에 누가 들어온대요?”
“확정된 거 없습니다.” 재호가 말했다.
“확정이 안 됐는데 내 이름으로 상담을 받았어요?”
장미경의 뒤에서 배수완이 작은 수첩을 펼쳤다. 그는 늘 그랬듯 종이를 세 칸으로 나누었다. 사실, 추정, 아직 모름. 장미경은 공고에 적힌 금액을 사실 칸에 넣으라고 했고, 재호는 공고가 붙어 있었다는 사실과 실제 입주자가 있다는 추정은 다르다고 말했다.
정도윤은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왔다. 목에는 낡은 호루라기가 걸려 있었다.
“전원 관리실 앞 집결. 이건 작전회의가 필요합니다.”
“아침 여섯 시 반에 무슨 작전이에요?” 해인이 물었다.
“방 하나가 사람보다 먼저 주민을 움직였잖아요. 이 정도면 작전입니다.”
주민들이 한 사람씩 복도로 나왔다. 302호는 반년째 공실이었다. 적어도 관리 장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밤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났고, 새벽에는 누군가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는 민원이 세 건이나 접수되어 있었다. 관리실 서랍 안에는 그 민원들이 날짜순으로 꽂혀 있었다.
재호는 장부를 펼쳤다. 빈방 항목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어 있다는 말만 너무 깨끗하게 남아 있었다.
“공실이면 관리비도 안 나오죠?” 장미경이 물었다.
“공용 전기와 기본 청소비는 나옵니다.”
“그럼 누가 세탁기를 쓰고 물을 쓰면요?”
재호는 답하지 못했다. 해인이 외투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열어 봐야 해요.”
“소유자 확인부터 해야 합니다.”
“제가 소유자 쪽입니다.”
“그 말로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해인은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열쇠를 건넸다. 열쇠에는 302라는 숫자가 긁혀 있었다. 재호가 문 앞에 서자 복도 끝에서 누군가 기침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모두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물쇠가 돌아갔다. 문은 안쪽에서 한 번 걸렸다가 천천히 열렸다.
방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낡은 접이식 의자 하나와 세제 통 두 개, 벽에 기대 놓인 작은 선풍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바닥에는 최근에 닦은 물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부엌 싱크대 옆 우편함에는 봉투 세 장이 꽂혀 있었다.
해인이 봉투를 꺼냈다. 받는 사람 이름은 모두 지워져 있었고, 한 장의 모서리에 K.서라는 이니셜만 번져 있었다.
“이건 건드리지 말고 사진만 찍죠.” 재호가 말했다.
“누군가 계속 우편물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그 순간 방 안쪽에서 짧은 전자음이 울렸다. 삐, 삐, 삐. 세탁기가 끝날 때 나는 소리였다.
장미경이 뒤로 물러났다. 도윤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지만 불지는 못했다. 재호는 욕실 문을 열었다. 세탁기는 전원이 꺼진 것처럼 보였는데 작은 화면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종료 시각이 표시되어 있었다. 오전 6시 41분.
“계량기부터 볼게요.”
관리실에서 가져온 손전등으로 전기 계량기를 비추자 숫자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는데 전기는 사용되고 있었다.
해인이 바닥을 살폈다. 세탁기 아래에서 욕실 쪽으로 젖은 발자국이 이어졌다. 사람의 발 크기였지만 한쪽 뒤꿈치가 유난히 깊게 찍혀 있었다.
재호는 장부를 펼쳐 새로운 줄을 만들었다.
302호. 공실 처리 보류. 사용 흔적 확인. 소음과 전기 사용 기록 시작.
해인이 펜을 받아 그 아래에 이름을 썼다. 서해인.
“공동 책임자로 적어요.”
재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책임자라는 말은 수리비도 같이 낸다는 뜻입니다.”
“알아요.”
“문을 연 사람도, 문을 열게 한 사람도 같이요.”
해인은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호가 이름을 적자 두 사람의 서명이 같은 칸에 들어갔다. 장미경은 그걸 보며 관리비가 두 사람에게 반씩 청구되는지 물었고, 도윤은 공동 책임자에게 호루라기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완은 웃지 않고 장부의 여백에 그 말까지 적었다.
방을 나서려던 순간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관리비 고지서는 아직 안 왔습니까?”
모두가 얼어붙었다.
재호는 욕실과 베란다를 차례로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욕실 환풍구에는 먼지만 쌓여 있었다. 그런데 젖은 발자국은 문 안쪽에서 시작해 복도까지 이어져 있었다.
복도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급히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재호가 손전등을 켰을 때 보인 것은 젖은 발자국뿐이었다. 가장 끝의 자국은 계단 쪽으로 향하지 않고 302호 문 앞에서 멈춰 있었다.
해인의 시선이 재호의 휴대전화로 내려갔다. 화면에는 서울 면접 안내 문자가 떠 있었다. 그녀는 읽은 척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날 오후 주민들은 1층 분식집 앞에 모여 공고의 보증금과 월세를 계산했다. 장미경은 월세를 세 명이 나누면 얼마인지 계산했고, 도윤은 보증금이 공동기금에서 나가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수완은 “공고에 적힌 금액은 확인됐지만, 누가 적었는지는 모른다”고 반복했다.
재호는 공고를 투명 파일에 넣어 관리실 금고에 보관했다. 해인은 302호 우편함에서 나온 봉투를 따로 봉인했다.
“왜 이 방을 숨기려고 한 걸까요?”
“숨긴 게 아니라, 누군가 비워 둔 척했을 수도 있어요.”
밤이 깊어질 때까지 아무도 그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새벽 세 시가 조금 지나 해인이 관리실로 돌아왔다. 손에는 오래된 계약서 두 장이 들려 있었다.
“재호 씨. 이거 봐요.”
첫 장에는 302호가 공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장은 중간 부분이 칼로 도려내져 있었다.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물에 번진 K라는 흔적만 남아 있었다.
재호는 출입기록에 시간을 적었다. 8월 20일 오전 3시 17분. 302호에서 누군가 나왔다. 하지만 카메라에는 복도의 젖은 바닥만 찍혀 있었다.
해인이 말했다.
“이 방을 그냥 공실로 둘 수 없어요.”
“그럼 주민들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공개하면 누군가 바로 문을 부수고 들어올 수도 있어요.”
재호는 대답 대신 관리실 게시판에 종이를 붙였다. 302호 관련 발견물과 사용 흔적을 공동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아래에는 첫 번째 규칙을 적었다.
발견한 흔적은 지우지 않고 함께 확인한다.
다음 날 아침, 관리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장미경의 고함이 1층을 울렸다. 그녀는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있었다. 분식집 냉장고와 냉동고가 동시에 멈춰 있었다.
“관리인이 고친다더니 내 장사를 먼저 고쳤네. 이거 누가 물어낼 거예요?”
재호는 손에 든 302호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해인은 계단 위에서 젖은 발자국을 발견하고 몸을 굳혔다. 발자국은 302호에서 내려와 202호 앞에서 끝나 있었다. 문 안쪽에서는 예약을 기다리는 세탁기의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재호가 장부를 펼쳤다.
“오늘은 202호부터 확인합니다.”
해인이 그의 옆에 섰다.
“이번에는 주민들 앞에서 같이 열어요.”
장미경은 녹은 아이스크림 통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냉장고부터 살려요. 이건 오늘 안에 안 살리면 전부 버려야 해요.”
202호 문고리가 안쪽에서 한 번 돌아갔다. 재호가 열쇠를 꽂았고, 해인이 손전등을 켰다. 두 사람은 문을 동시에 밀었다. 안쪽 바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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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 시각: 2026-08-20T09:23:20+09:00
MOBOT 세계관 변환 근거
- 한 기업이 로봇 기업의 지배권을 확보한 소유 관계: 가짜 공고를 공동 관리 문제로 채택하는 장면에 사용했다. - 소유 관계에서 다음 개발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연결: 공고를 떼는 일이 공동 책임 서명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