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7

협력업체가 가져온 두 번째 열쇠

지산맨션에는 빈방이 없다

302호 문 아래로 나온 봉투에는 8월 29일 오전 9시 안전 점검이라는 문장이 굵게 적혀 있었다. 재호는 봉투의 앞뒤를 촬영한 뒤 주민들을 관리실로 불렀다. 빠른집 대표는 아직 공사를 끝내지 못한 벽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점검 전까지 배관을 복구하려면 추가 비용이 필요합니다.”

“얼마입니까?” 장미경이 물었다.

“18만 원입니다. 벽을 다시 열고, 전기와 배관을 분리하고, 바닥을 말려야 합니다.”

수완은 비용 항목을 세 줄로 나누었다. 배관, 전기, 건조. 대표는 새 부품을 쓴다고 했지만 상자 안에는 재사용 밸브가 섞여 있었다. 재호가 부품 번호를 확인하자 대표가 말했다.

“모든 현장이 그렇게 돌아갑니다. 새 부품만 쓰면 주민들이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요.”

“그럼 견적서에 새것과 재사용을 따로 적으세요.”

“그러면 저희가 불리해집니다.”

해인이 탁자 위의 계약서 원본을 가리켰다.

“원본을 담보로 가져가면 우리가 더 불리해집니다.”

대표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다른 현장에서도 공사비를 낮추라는 압박을 받고 있고, 부품값을 먼저 지불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재호는 그 사정을 들었지만 주민들에게 손해를 넘기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새로운 계약 조건을 다시 적었다. 선급금 20만 원, 부품 종류와 가격의 분리 표기, 작업 전후 사진, 모든 영수증 공개, 주민 두 명 이상 입회, 원본 계약서 반출 금지, 추가 비용 발생 시 사전 동의. 도윤은 각 조항 옆에 서명 칸을 만들었다.

대표는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이렇게 하면 저희는 공사를 하고도 돈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재호가 말했다.

“그래서 계약서에 지급일과 책임 범위를 정확히 적는 겁니다. 서로의 불안을 서류로 옮기되, 어느 한쪽의 원본을 가져가지는 맙시다.”

해인이 먼저 서명했다. 재호가 그 옆에 서명했고, 미경과 수완, 도윤이 증인으로 이름을 적었다. 미경은 계약서 아래에 간식 비용은 공사비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이건 꼭 넣어야 해요. 지난번에 대표님이 제 과자 두 개 드셨잖아요.”

대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 계약이 체결되자 그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벽 안쪽으로 들어갔다.

재호는 부족한 금액을 자신이 빌리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이 동시에 반대했다. 각자 낼 수 있는 만큼 부담하기로 했고, 공동기금에서는 18만 원을 우선 지급하되 법률 상담비와 겹치면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공동기금 잔액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공사 중 점검구 안쪽에서 열쇠 하나가 나왔다. 202호 열쇠였다. 열쇠 고리에는 젖은 종이가 붙어 있었고, 다음 방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빠른집 대표가 벽 안쪽을 더 열자 물결세탁소 주소와 20만 원이라는 메모가 함께 발견됐다.

“이건 누가 적은 겁니까?”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넣은 게 아닙니다.”

재호는 주소를 보자 앞선 사건에서 찾았던 세탁소를 떠올렸다. 해인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세탁소 주인은 마지막 기계의 필터를 열어 보라고 했다. 안쪽에서 종이 두 장이 나왔다.

하나는 재호의 이름이 들어간 계약서 사본, 다른 하나는 해인의 이름이 들어간 사본이었다. 같은 302호를 가리키지만, 서명 날짜와 도장이 서로 달랐다.

해인이 종이를 내려놓았다.

“누군가 우리 이름을 이용해 책임자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재호는 계약서의 증인란을 보았다. 장미경의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미경은 세탁소까지 찾아와 종이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제가 서명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서기철에게 고지서를 받아 준 적은 있습니다. 그때부터 이런 식으로 된 건지도 모르죠.”

수완은 사진을 찍고 원본을 다시 봉인했다. 법적 진위를 확정할 수 없다는 문장을 적었다. 해인은 자신의 사진을 꺼내려다 멈췄다. 재호는 그 움직임을 보았지만 그녀가 장부를 닫는 것을 기다렸다.

세탁소 밖으로 나오자 재호의 휴대전화에 면접 알림이 떴다. 시작 시각은 이미 지나 있었다. 그는 화면을 껐다.

“놓쳤어요.”

해인이 멈춰 섰다.

“제가 가지 말라고 한 적 없어요.”

“알아요.”

“그런데도 미안해요.”

“미안해하지 마요. 제가 결정한 겁니다.”

“그럼 제가 그 결정을 이용하지 않게 해 주세요.”

재호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해인은 남아 달라고 말하지 않았고, 재호는 자신이 남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젖은 계약서 사본을 들고 맨션으로 돌아갔다.

공사는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빠른집 대표는 배관을 분리하고 전기 팬의 차단기를 따로 만들었다. 바닥을 말리기 위해 송풍기를 틀었지만, 바닥 아래쪽에서 물이 다시 올라왔다.

대표가 소리쳤다.

“밸브를 잠근 상태인데도 물이 나옵니다!”

재호는 바닥 타일을 뜯는 순간 계약서 봉투가 있는 방향에서 물이 번지는 것을 보았다. 물은 배관과 무관하게 점검구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공사를 끝냈는데 왜 또 새죠?” 도윤이 물었다.

대표는 얼굴을 굳혔다.

“이건 저희가 고친 부분이 아닙니다. 다른 통로가 있어요.”

해인은 젖은 바닥을 보며 사진 속 아이를 떠올렸다. 사진을 재호에게 보여 주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아직 확신할 수 없는 기억을 사람 앞에 내놓는 일도 숨기는 일만큼 위험해 보였다.

재호는 물에 젖은 원본 계약서를 투명 상자에서 꺼냈다. 종이 가장자리의 잉크가 번져 새 글자처럼 보였다. 도려낸 이름 자리 아래에서 희미한 선이 드러났다.

빠른집 대표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잠시 듣더니 재호에게 전화를 넘겼다.

“점검 담당자가 내일 오전 9시에 현관으로 온다고 합니다. 매수자 대리인도 함께요.”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302호를 비우지 않으면 안전 점검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계약금 집행도 그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재호는 주민협약 초안을 펼쳤다. 주민 입회, 공개 기록, 안전과 거주권의 분리. 아직 임시로 만든 규칙이었지만, 이제 그 규칙이 없으면 누구도 방을 열 수 없었다.

해인이 전화기를 받아 말했다.

“주민 입회 없이 문을 열지 않겠습니다.”

“그럼 점검을 거부하는 것으로 기록하겠습니다.”

해인은 잠시 침묵했다.

“안전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안전을 핑계로 사람의 권리를 지우는 방식을 거부하는 겁니다.”

통화가 끊겼다. 관리실 안에 있던 주민들이 조용해졌다.

재호는 점검 안내 봉투를 장부에 붙이고, 내일 출입할 주민 명단을 작성했다. 해인은 자신이 외삼촌에게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지만, 재호가 말렸다.

“이번에는 혼자 해결하지 마요.”

“저도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요.”

그녀는 주민들 앞에서 사진 봉투를 꺼내려다 다시 넣었다. 재호는 그 행동을 보고도 기다렸다. 서로에게 모든 것을 요구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밤이 되자 302호 바닥의 물기는 줄었지만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복도등은 한 층씩 늦게 켜졌다. 3층 전등이 들어왔을 때, 문 아래로 새로운 봉투가 들어왔다.

당신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이미 선택했습니다. 안전 점검 때 방을 열어 주세요.

서명은 없었다. 봉투 안에는 2019년 사진의 뒷면을 찍은 복사본이 들어 있었다. 사진에 적힌 문장은 이번에는 더 선명했다.

다시 오면 문을 열어 줄 것.

재호는 복사본을 주민 장부에 붙였다. 해인은 원본 사진을 여전히 품에 넣고 있었다. 빠른집 대표는 내일 점검 전까지 바닥을 말리기 위해 송풍기를 켰다. 팬 소리가 벽 안쪽에서 낮게 이어졌다.

현관 밖에서는 낯선 차량이 한 번 멈췄다가 떠났다. 재호가 창문으로 내려다보자 차량 번호판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해인은 주민 입회 명단을 들고 관리실 문 앞에 섰다.

“내일 오전 아홉 시에 문을 열어요.”

재호가 물었다.

“누구를 위해서요?”

해인은 명단을 주민 장부 위에 올려놓았다.

“안전이 거주권을 삼키지 않게 하려고요.”

그날 밤 302호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바닥 아래에서는 물이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재호는 젖은 계약서 상자를 닫고 열쇠를 주민 장부 옆에 놓았다. 현관 센서등이 켜졌다. 새벽이 오기 전, 외부 점검자와 매수자 대리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홉 시가 되자 지산맨션 현관 앞에 검은 승용차가 멈췄다. 안전 점검자는 서류 가방을 들고 내렸고, 매수자 대리인은 302호 열쇠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해인이 주민 명단을 펼쳤다. “먼저 입회자 이름부터 적으세요.” 재호는 현관문을 열었다. 점검자는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302호를 비워 두지 않으면 전체 평가가 낮아질 겁니다.” 해인은 열쇠를 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럼 낮아진 평가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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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 시각: 2026-08-20T09:23:20+09:00

MOBOT 세계관 변환 근거

- 협력사와 공급망을 다시 짜려는 계획: 공동 서명으로 비대칭 계약을 재협상하는 장면에 사용했다. - 협력망 재편 계획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보도: 불확실한 계약 때문에 주민들이 먼저 책임지는 장면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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